“다녀올게”.
그러나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누군가의 어머니·아버지, 누군가의 아들·딸, 누군가의 아내이자 남편인 그들은 그렇게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일터에 갔다가 모두가 기다리는 집으로 ‘퇴근’하지 못했다.
“매해 하루 7명, 한해 2400명의 노동자가 온 나라에서 퇴근하지 못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에는 노동자·시민의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공무원을 비롯한 실질적인 책임자를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은 국회 국민동의청원 성립 요건인 시민 10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현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아직도 입법은 감감 무소식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제각각 법안을 발의했지만 내용은 모두 다르다.
노동·시민단체와 정치권이 사진전을 연 이유는 이 때문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필요성을 환기하기 위해, 신문 뉴스로만 보던 산업재해가 바로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사진전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와 민주노총·국회 생명안전포럼이 공동 주최했다. 생명안전포럼 소속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작업장의 전체 책임을 지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렇게 책임을 묻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야 된다”며 “제도를 만들어야 작업장의 분위기가 바뀌고 비로소 작업자의 안전이 유지된다.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하고 통과시키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0일까지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전시 중인 <오늘도 다녀오지…못했습니다> 사진전의 주요 사진들을 소개한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에서 스러져간 19세 김모군
2016년 5월28일 김모군(당시 19세)이 스크린 도어를 정비하다 전동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2인1조라는 근무 원칙은 적용되지 않았다. 그는 홀로였다.
120여개 넘는 역사의 외주화된 지하철역 스크린 도어 정비업무는 하청업체의 적은 인원에게 떠맡겨졌다.
그러나 원청인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에게 내려진 처벌은 ‘벌금 1000만원’뿐이었다.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 스크린 도어 산재사망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가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ST유니타스 과로로 스스로 생을 등진 웹디자이너
인터넷 강의 업체 ST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장민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사의 과도한 업무량, 높은 직무 스트레스,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일방적 업무지시와 일터 괴롭힘 등이 원인이었다. 수차례 근로감독 요구는 거절당했고, ST유니타스는 사과 대신 오히려 고인의 우울증을 문제 삼았다. 지금도 ST유니타스의 노동환경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ST유니타스는 노동관계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았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과로로 잇따라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택배 노동자들
올해만 15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택배 물동량이 지난 7월 기준, 지난해보다 4328만 개가 늘어나 업무량이 증대하고 노동시간도 길어졌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 로젠 등 대형 택배회사는 물류 증가로 수익이 크게 늘었음에도 살인적인 노동강도, 공짜노동(분류작업)에 대한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택배회사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신분을 이용, 과로사를 포함한 산업재해를 개인 책임으로 전가할 뿐이다.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산재사망
지난 4월29일 한익스프레스가 발주한 남이천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 지하 2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건설노동자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40명이 목숨을 잃은 2008년 이천 냉동창고을 떠오르게 하는 참사였다. 지난 7월20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발주처 한익스프레스 관계자 1명과 법인 ‘건우’는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 산업재해
2007년 3월 6일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반도체 세정작업을 하다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에 의해 알려진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2013년 1월 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불산유출 사고에 삼성과 책임자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인과관계가 명백한 사고에도 가벼운 처벌만 있는 상황에서 직업병 관련 형사처벌이나 손해배상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황씨 유가족의 문제 제기 뒤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타났지만 삼성은 오랜 세월 책임을 회피했다. 포기하지 않은 피해자, 이들과 함께한 사람들 덕분에 이제 71명의 피해자들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피해는 여전하다. 올해 7월2일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기준으로 사망자는 199명, 질병피해자는 696명에 달하고 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산재사망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 24세 비정규직노동자 김용균씨. 홀로 태안화력발전소의 석탄운송설비 점검 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김씨 사망 뒤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개정됐지만, 발전소의 노동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등 원·하청 책임자 14명은 사고 발생 1년 8개월이 지난 10월에서야 재판에 넘겨졌다.
■광주 조선우드 김재순 산재사망
지난 5월22일 중증 지적장애인이었던 김재순씨는 전남 광주에 있는 폐기물 처리 업체 조선우드에서 파쇄기에 낀 폐기물 제거작업을 하다 미끄러져 사망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2인1조 작업원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현장관리자도 없었다. 조선우드는 6년 전 파쇄기 끼임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했던 사업장으로 노동환경개선 권고를 받았으나 따르지 않았다. 노동부는 추가 관리 감독이나 재발방지대책 마련 없이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도록 방치했다.
■제주 현장실습 고교생 이민호군의 안타까운 죽음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 다니던 이민호군은 제주의 음료공장 제이크리에이션에서 현장실습 중 오작동을 일으킨 기계에 몸이 끼이는 사고로 사망했다. 오작동된 기계의 오류를 제거하려고 기계 안으로 들어갔던 이군의 행동은 학습된 행동이었다. 기계 주변에는 안전장치도, 사고시 울려야 할 비상벨도 없었다. 위험한 작업임에도 위험시 상황을 관리해야 할 관리자도 없었다. 교육 과정으로 일을 배우러 갔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현장에서 ‘교육’이 아닌 ‘열악한 노동’을 강요당하는 현장실습생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일터 괴롭힘으로 자살한 CJ제일제당의 진천 육가공 공장 현장실습생 김동준(2015년), LG유플러스 전주고객센터 현장실습생 홍수연(2017년) 사망 뒤에도 ‘열악한 노동현장’이 있었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정차 중인 1079열차 1호차에서 방화로 화재가 발생했다. 같은 시각 반대편 선로로 들어온 1080열차에 불이 옮겨지면서 역 전체로 화재가 확산되며 참사가 발생했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화재에 취약한 부실 자재로 제작된 전동차, 화재 예방에 적합하지 않은 지하철 역사, 불충분한 소방장비, 형식적인 방재관리계획서, 소홀한 안전교육 및 훈련 등 비용 절감을 우선한 공공교통시설의 총체적인 안전관리 부실이 발생시킨 사회적 참사였다. 모두 192명이 사망하고 146명이 부상을 당한 참사였다. 하지만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은 무죄를, 법인은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습기 위생관리를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시민들이 폐손상 증후군으로 영유아, 아동, 임신부, 노인 등이 질병을 얻거나 사망한 사건으로 2011년 4월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2년 2월 동물실험 결과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PHMG, 인산염,PGH의 독성이 확인되었다. 최대 가해 업체인 옥시는 살균제 개발 전 제품 유해성 경고를 받고도 이를 무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1994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판매한 유공(현 SK케미컬)이 환경부에 제출한 신고서에 살균제 원료인 PHMG가 “흡입하면 해로울 수 있다”고 했지만 정부는 추가 독성 자료를 요구하거나 유독물로 지정하지 않았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1만4000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잊어선 안되는 참사…세월호 참사
2014년 4월16일은 한국 국민들이라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청해진해운이 운영하는 인천항과 제주항을 오가는 정기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 침몰해 승선객 476명 중 304명이(단원고 250여명) 사망한 참사다. 6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침몰원인과 함께 왜 적극적인 구조가 없었는지, 당시 국정원은 사고에 얼마나 개입했는지 등 진상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최근 국민동의청원으로 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선사 (주)폴라리스 쉬핑은 개조한 노후선박인 스텔라데이지호의 결함을 발견하고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고 영업이익을 위해 운항을 감행했다. 그 결과는 남대서양에서 참담한 선박 침몰로 이어졌고 탑승인원 24명 중 22명이 실종됐다.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사고 뒤에는 사람을 구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월호와 다르지 않은 재난참사였다. 검찰의 구형보다 낮은 판결을 내린 재판 또한 참사 재발을 조장하는 판결로 솜방망이 처벌의 하나로 기록됐다.
■“매해 하루 7명, 한해 2,400명의 노동자가 온 나라에서 퇴근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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